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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리산의 길] 악양을 휘돌아 걷는 박경리 토지길 11.6km

틀니딱딱 2017. 1. 5. 22:28
[지리산의 길] 악양을 휘돌아 걷는 박경리 토지길 11.6km
http://v.media.daum.net/v/20170104184001836

출처 :  [미디어다음] 여행 
글쓴이 : 월간마운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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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무딤이들. 섬진강변 평사리공원에 주차하고 19번 국도를 건너면 눈앞에너른 평야와 지리산이 펼쳐진다. 박경리는 소설 <토지> 서문에 '악양 평야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외부에서는 넘볼 수 없는 호수의 수면 같이 아름답고 광활하며 비옥한 땅이다.'라고 적고 있다.
첫서리가 내렸어요

평사리 무딤이 들판에요

맨발의 까마귀가 발 시려워 종종걸음 걷네요

소죽 끓이는 냄새가 담 넘어 오고요

백년해로 부부 소나무 손잡는군요

첫서리 내린 늦가을 날 저녁이에요

손 꼭 잡고 주무세요

-조문환의 책 <평사리일기> 중에서

[글·사진 황소영 객원기자]

토지길 제1코스는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를 주축으로한 원점회귀형 걷기길이다. 하동군 홈페이지에 따르면 평사리공원~평사리들판~동정호~고소성~최참판댁~조씨고가~취간림~문암송~악양천제방~평사리공원~화개장터까지가 1코스, 화개장터~가탄마을~십리벚꽃길~차시배지~쌍계석문바위~쌍계사~불일폭포~국사암까지가 2코스다. 1코스 18km를 걷는 덴 4시간 30분이 걸리고, 2코스 13km를 걷는 데는 3시간 30분이 소요된다고 적혔다. 하지만 이 시간만믿고 떠났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길은 더 멀고 오래 걸린다.

1악양 한산사에서 고소성으로 올라가는 길. 왕복 1.8km로 쉬엄쉬엄 1시간 30분쯤 걸린다.
토지길 위의 안내판은 군 홈페이지 등록 정보와 다르다. 안내판에 의하면 제1구간은 평사리공원을 빼고 최참판댁 입구에서 조씨고가와 취간림을 지나 평사리 들판으로 돌아오는 10km이고, 2구간은 동정호와 평사리공원을 거쳐 화개장터까지 가는 11km, 3구간은 화개장터~십리벚꽃길~불일폭포까지의 13km다.

2구간의 경우 경유지만 놓고 보면 ‘섬진강 100리 테마로드’ 중 야생차존~문학존과 길이 겹친다. 3구간은 거리가 가장 긴데다 종점에서 차를 타고 돌아올 수 있는 여느 구간과는 달리 불일폭포까지 갔다가 차량 운행이 가능한 쌍계사로 되돌아 나와야 한다. 쌍계사에서 불일폭포는 왕복 4.6km의 산행 코스다.

평사리 무딤이들과 최참판댁

전남 구례와 경남 하동을 잇는 19번 국도는 안개로 가득했다. 마치 <무진기행> 속 안개 같다. 평사리공원에 도착하고서야 강과 산 사이를 삼킬 듯이 점령했던 안개가 사라졌다. 동쪽에서부터 올라온 눈부신 겨울 햇살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강바람은 매서웠지만 볕만 놓고 보면 초봄이라고 해도 믿길 정도였다.

고소성 직전의 솔숲길. 정확한 축조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가야시대의 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봄 왔던 평사리공원에 주차를 한다. 벚꽃이 흩날리고, 아카시아 향이 가득했던 봄날의 섬진강은 차가운 겨울빛을 받고 짙은 파랑으로 반짝였다. 강바람은 살아있는 은어떼처럼 팔딱댔다. 배낭을 정리해 19번국도로 나선다. 2차선 도로는 그때, 섬진강 100리 테마로드를 걸었던 봄날처럼 여전히 확포장 공사 중이다. 횡단보도는 없다. 좌우를 잘 살펴 건넌 후 왼쪽으로 가면 ‘토지길’이정표가 나온다.

화살표 쪽으로 접어들고서야 바람은 잠잠하고, 도로 확장에 따른 공사 소음도 잦아든다. 등 뒤에 두고 온 섬진강도 바다를 향해 내달리느라 길을 걷는 이에겐 관심이 없다. 눈앞에 산과 들녘이 펼쳐진다. 지리산과 평사리 무딤이들이다. 무딤이는 섬진강의 수분과 지리산의 양분을 한껏 받아낸 악양 평야의 이름이다.

최참판댁은 소설 <토지>에 등장하는 가상의 공간을 현실로 끄집어낸 건물이다. 토지길이 아니어도 여행 삼아 다녀오기 좋다.
최참판의 땅을 빌어 살았던 무지렁이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허리 펼 일 없이 땀을 쏟아냈던 땅, 물론 소설 속 얘기지만 들녘은 소설이 쓰이기 이전부터 이 자리에 누워 노동의 땀을 받아내며 풍족한 곡식을 내어주었다. '거지가 악양에 들어와 한 집에서 한 끼씩만 얻어먹어도 1년이면 여섯 집이 남는다.'식의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니까.

밭둑과 논둑엔 서리가 내렸다. 밤하늘을 떠돌던 공기는 풀잎 위에 지친 몸을 누이고 새하얀 이불을 덮었다. 아침 햇살이 닿을 때마다 서리는 물방울이 되었다. 수확을 끝낸 배나무 가지 끝엔 대롱대롱 물방울이 맺혔다. 벼를 베고 난 논은 누런 황톳빛이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작물은 이 겨울에도 초록이다. 보리나 밀일 수도 있다. 무딤이들은 겨울에도 쉬지 못하고, 제한 몸 불살라 열매를 키우고 있었다.

토지길은 무딤이들 사이사이로 이어지다 도로 너머 최참판댁으로 연결된다. 역시 횡단보도는 없다. 도로변엔 토지길을 소개한 안내판이 있다. 앞서 이미 설명한 것처럼 하동군 홈페이지와는 다르다. 평사리공원에 주차하고 다시 평사리공원으로 돌아오는 원점회귀도 괜찮고, 최참판댁 입구에 주차하고 최참판댁 입구로 돌아오는 원점회귀도 상관없다. 아무래도 평사리공원에서 시작하는 게 조금 더 길긴 하다.

사적 제151호로 지정된 고소성에 올라서면 악양 일대의 풍경과 섬진강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최참판댁 입구에서 길이 나뉜다. 왼쪽은 고소성(사적 제151호), 오른쪽은 최참판댁이다. 시간과 여건이 된다면 고소산성에 가보는 것도 좋다. 고소성에 오르면 풍경의 범위는 훨씬 넓고 깊어진다.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원군인 위병의 섬진강 통로를 차단하기 위해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근래엔 가야의 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확한 축조 연대는 알 수 없다. 성 위에 서면 지리산의 위용과 굽이진 섬진강, 강 너머 백운산의 ‘엄지척’ 억불봉, 그사이에 거침없이 펼쳐진 들녘과 두 그루의 소나무(부부송), 한쪽 귀퉁이에 자리를 튼 동정호까지 한눈에 조망된다.
고소성에서 내려다본 섬진강. 고소성에서 북쪽으로 길을 이으면 지리산둘레길 대축~원부춘구간을 지나 철쭉으로 유명한 신선대와 형제봉, 더 나아가 지리산 영신봉까지 가 닿는다.

허구에서 현실로, 최참판댁

매표소(2,000원)를 지나면 좌우로 문을 연 상가들이 나오고, 그 길의 끝에 최참판댁이 있다. 윤씨부인, 최치수, 별당아씨 그리고 서희와 길상, 가상의 공간과 현실의 공간 사이에서 머리가 어질하다. 집안 곳곳 손때를 묻혔을 소설 속 인물들이 3D 영화처럼 눈앞에 확연하다. 최참판댁 담 너머로 드라마 세트장으로 쓰인 낮은 지붕의 초가집들이 보인다. 좀 전에 느릿느릿 걸었던 무딤이들이며 섬진강도 보인다. 솟을대문 문고리는 굵고 묵직하다. 그 뒤로 작은 문고리가 두 개 더 달렸다. '문고리 3인방' 서글픈 농담을 하며 마당을 벗어난다.

최참판댁 입구 삼거리에서 토지길 이정표 방향으로 가면, 비수기의 경우 매표소를 통과하지 않고 출입할 수 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하동의 대표 관광지 최참판댁까지는 굳이 토지길을 걷지 않아도 쉽게 갈 수 있다. 하지만 토지길이 처음인 이들에게 최참판댁은 미로 공간과도 같다. 자칫하단 이정표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악양 토지길 걷기 실패. 팻말 하나 안 붙어 있음.' SNS엔 종종 이런 글이 올라온다. 최참판댁을 모두 둘러 봤다면 본채를 등 뒤에 두고 왼쪽 나무계단으로 내려선다. 좌측에 비수기나 평일엔 장이 서지 않는 ‘토지장터’가 있다. 한때는 막걸리나 먹거리를 팔며 관광객들을 맞았던 곳이다. 휑한 토지장터를 통과하면 그다음 목적지인 조씨고가 이정표가 나온다. 관광객이 몰리는 최참판댁과는 달리 이후로는 길이 한적하다.
드라마 <토지> 세트장.
민가는 거의 없이 차 한 대 겨우 지날만한 길옆으로 밭들이 즐비하다. 미처 수확하지 못한, 아니 겨울새에게 먹이로 남겨준 대봉감들이 홍시가 되어 길 위에 떨어졌다. 떨어진 감에서조차 단내가 훅, 올라온다. 차밭도 있다. 한겨울 추위도 사계절 내내 초록인 찻잎을 어찌할 수 없는 모양이다. 봄은커녕 겨울의 절정기도 지나지 않았는데 토지길 위의 색깔은 이미 봄이다.
평사리 무딤이들을 대표하는 두 그루의 소나무, 부부송
대촌마을 지나 보문사 갈림길부터 지리산둘레길 ‘대축~원부춘’ 구간과 길이 겹친다. 이후로는 지리산둘레길 이정표를 따라야 하지만 입석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선 아랫길로 내려가야 맞다. 지리산둘레길 이정표를 따라 올라서면 길은 곧 끊기고 산으로 들어선다.

지리산 영신봉(세석)에서 발원해 형제봉~신선대~고소산성을 거쳐 섬진강 앞까지 내달린 남부능선이다. 대축~원부춘 구간은 이 능선을 통과해 화개면에서 끝난다. 적어도 지금걷고 있는 토지길 1코스는 악양면에 국한돼 있다. 발아래 입석마을로 내려선다. 골목길 바닥에 ‘토지길’ 노란색 글씨와 화살표가 적혔다.

조씨고가와 취간림

정서마을을 지나 최참판댁의 실제 모델이 된 조씨고가에 닿는다. 조선 개국공신 조준(1346~1405)의 직계 후손인 조재희가 100년도 훨씬 전에 지은 집이다. 대문은 굳게 잠겼다. 4년 전쯤엔 조준의 19대손인 조한승 옹이 거처하며 관리했다. 해방 직후 구빨치산을 피해 고향을 떠났던 조옹은 부산과 대구, 멀리 강원도에서까지 직장생활을 하다 노구를 이끌고 홀로 귀향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뒤꼍의 작은 텃밭을 돌보거나 가끔 찾아오는 관광객에게 따뜻한 커피를 내고, 대문 밖까지 나와 손을 흔드는 일이 조옹의 하루 일과였다. 이제는 살아 계셔도 아흔이 넘었을 테니 굳게 닫힌 저 대문의 쓸쓸한 그림자가 가슴을 더 아리게 한다.

조씨고가의 모습.
조씨고가가 있는 상신마을을 벗어나 아스팔트 큰길을 따르다 농협 하나로마트 앞에서 좌회전해 취간림으로 향한다. 지난 2000년 ‘한국의 아름다운 숲’ 전국 대회에서 마을 숲 부문 우수상을 거머쥔 취간림은 조선시대 즈음 악양천 변에 수구막이를 위해 조성한 인공 숲이다. 숲 가운데 쉬어갈 수 있는 정자가 있다. 일제 강점기에 지리산 일대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순국한 의병 및 항일 독립투사의 넋을 기린 기념탑 등도 있다.

다리를 건너 악양면소재지를 벗어난 후에야 잊고 있던 무딤이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강이 가까워질수록 바람은 거세다. 거센 바람 속으로 토지길을 걷는 이들과 지리산둘레길을 걷는 이가 교차된다. 그림자에서도 바람 냄새가 난다. 머리카락이 흩날릴 때마다 길어진 그림자도 휘청이며 몸을 흔든다. 제방 아래 무딤이 사잇길로 차가 지난다. 두 바퀴 자전거도 달리고, 배낭을 멘 사람도 오간다. 초록의 밭작물은 찬바람에도 꼿꼿이 허리를 편다.

꽃들이 안달 난 봄이나 대봉감 단내가 풍기는 가을도 좋지만, 겨울의 토지길도 나쁘진 않다. 길 대부분이 포장도로인 게 흠이지만 그 흠을 충분히 감싸 안을 만큼의 길, 길을 걷는 행위는 대체로 옳다. 19번 국도를 건너, 팔딱팔딱 살아 숨 쉬는 섬진강으로 돌아온다. 바람은 공원을 떠날 때보다 더 매서워져 있었다.

모든 구간을 걷고 원점회귀 중인 취재진. 무딤이들녘의 길은 자동차와 자전거와 사람이 함께 하는 길이다.
INFORMATION
토지길 구간별 거리 평사리공원~최참판댁(2.1km)~조씨고가(4.1km)~취간림(1.9km)~평사리공원(3.5km) 거리 약 11.6km 시간 약 4시간 30분 (휴식 포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공원에 주차 후 19번 국도를 건넌다. 횡단보도가 없으므로 좌우를 잘 살펴야 한다. 국도를 건너 왼쪽으로 가면 토지길 이정표가 나온다. 이후로는 이정표대로 진행하면 된다. 진행 중 동정호와 최참판댁 갈림길이 나오는데 동정호를 다녀올 경우 왕복 1km 이상이 추가되므로 시간이 없다면 최참판댁 방향으로 가는 게 낫다.

평사리 들녘에서 최참판댁으로 가는 길에도 횡단보도는 없다. 주의하여 길을 건너면 고소성과 최참판댁 삼거리인데 최참판댁으로 가도 되고, 고소성 방향으로 가도 된다. 고소성 방향으로 가면 비수기일 경우 별도의 입장료 없이 최참판댁 출입이 가능하다. 입장료가 부담된다면 아예 평사리에서 취간림~조씨고가 등의 역방향 코스를 선택한다.

고소성은 토지길 코스엔 빠져 있지만 조망이 좋은 곳이어서 여건이 된다면 다녀오는 게 좋다. 왕복 1시간 30분 남짓이다. 최참판댁에선 토지장터쪽으로 가야 조씨고가 이정표를 볼 수 있다. 보문사 앞에선 지리산둘레길 대축~원부춘과 길이 겹친다. 지리산둘레길 이정표를 따르다 입석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선 마을 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입석마을을 통과하면 한적해진다. 조씨고가에서 취간림까진 큰 도로다. 취간림을 지나 다리를 건너 제방을 따라 평사리공원으로 돌아온다.
동정호.
오가는 길 (지역번호 055) 대중교통 서울 서초동남부터미널에 악양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아침 6시 30분 첫차부터 밤 10시까지 하루 10회 운행하며, 요금은 22,900원. 3시간 35분쯤 걸린다. 부산(12,600원) 등 경상권을 오가는 버스는 있지만 전라권으로 가려면 화개(1,400원)를 거쳐 구례 등으로 이동해야 한다. 터미널 연락처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www.busterminal.or.kr, txbus.t-money.co.kr) 1688-0540, 하동시외버스터미널 883-2663, 악양시외버스터미널 883-1252, 하동역 882-7788(1544-7788), 악양 택시 883-3009(010-3830-5100), 하동 택시 884-1717 자가용 서울 등 중북부권에선 천안논산고속도로와 완주순천고속도로로 진입, 이후 구례화엄사IC를 지나19번 국도를 따라 악양으로 이동한다. 남해고속도로의 경우 출발지에 따라 하동IC, 석곡IC, 옥곡IC 등으로 진입할 수 있고, 88고속도로는 남원IC를 이용한다. 평사리공원에 무료 주차가 가능하지만 성수기엔 주차요금을 받을 수도 있다. 최참판댁 주차장엔 별도의 요금이 없다. 기타 정보 (지역번호 055)•화장실은 평사리공원과 최참판댁에 있다.

•악양 최참판댁 입장료는 어른 1인 2,000원이다. 진입로 주변으로 카페와 식당, 향토물품 판매점 등이 있다. 문의 880-2950

•하동군 문화관광실 880-2380

•평사리공원 883-9004숙식정보 (지역번호 055) 악양 평사리공원에 오토캠핑장이 있다. 하루 이용료는 텐트 20,000원, 자동차 야영 24,000원, 카라반 캠핑은 30,000원이다. 평사리 최참판댁 일원에 한옥체험관(010-3886-5410)도 있다. 주말 기준 50,000원이며 간단한 취사가 가능하다. 최참판댁 앞의 우리콩순두부(882-3535)의 순두부찌개와 된장뚝배기는 1인분 7,000원씩이다. 악양면에 여명식당(883-5292), 솔봉식당(883-3337), 돈우가(883-3167) 등이 있다. 대촌마을에 카페 평사리의아침(883-3205)이 있다.

우리콩순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