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ic

폭설 - 오탁번

틀니딱딱 2014. 5. 30. 12:30

 

 

 

- 굴비 -

수수밭 김매던 계집이 솔개그늘에서 쉬고 있는데

마침 굴비 장사가 지나갔다.

굴비사려, 굴비! 아주머니, 굴비사요.

사고 싶어도 돈이 없어요.

메기수염을 한 굴비 장수는

뙤약볕 들녘을 휘 둘러 보았다.

그거 한번 하면 한 마리 주겠소.

가난한 계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품 팔러 간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올랐다.

웬 굴비여?

계집은 수수밭 고랑에서 굴비 잡은 이야기를 했다.

사내는 굴비를 맛있게 먹고 나서 말했다.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마!

수수밭 이랑에는 수수이삭 아직 패지도 않았지만

소쩍새가 목이 쉬는 새벽녘 까지

사내와 계집은

풍년(豊年)을 기원하며 수수방아를 찧었다

며칠 후 굴비 장수가 다시 마을에 나타났다

그날 저녁 밥상에 굴비 한 마리가 또 올랐다.

또 웬 굴비여!

계집이 굴비를 발라 주며 말했다.

앞으로는 안했어요.

사내는 계집을 끌어 않고 목이 메었다

개똥벌레들이 밤새도록

사랑의 등 깜박이며 날아다니고

베짱이들도 밤이슬 마시며 노래 불렀다.

 

오탁번

 

                                      1943년 충북 제천에서 출생

고려대 영문학과 및 동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문학 박사학위 받음

현재 고려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

1966년《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1967년《중앙일보》신춘문예에 시가,

1969년《대한일보》신춘문예에 소설이 각각 당선되어 등단

소설『우화의 땅』으로 <한국문학작가상>, 시집『겨울강』으로 <동서문학상>,

시「백두산천지」로 <정지용문학상>을 수상

저서로는 시집『아침의 예언』『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생각나지 않는 꿈』『겨울강』

『1미터의 사랑』『벙어리장갑』『손님』 등과,

소설집으로 『처형의 땅』『저녁연기』『겨울의 꿈은 날 줄 모른다』『순은의 아침』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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